동물원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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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격다짐 인터뷰_97세 시계수리공 이원삼할아버지












20여년전에 사촌형이 내게 주고간 시계가 있었습니다.
밥을 주면 가는 기계식 시계였고 그동안의 긴시간을
잘도 버텨주었지요. 여름이면 땀때문에 책상서랍속에서
지내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다시 팔목으로 오가는
십수년의 생활을 보내더니, 어느날 밥을 줘도
더이상 시계가 가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남대문 시장은 참 볼것이 많습니다.
한때 남대문 시장인근 건물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시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닌적이
있었는데, 그야 말로 별의별 물건들이 있지요
그중 한곳, 시계 골목이 있는데,
그곳에 아주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오래된 시계를 잘 고친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곳까지 가기에는 몇달이 걸렸습니다.
시계를 고치기로 마음먹고(사실은 폐기 처분해야 하나
그냥 기념품으로 간직할까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으나)
그 긴 시간을 함께 해온 끈끈한 관계, 정 그런 것들이 있는지
고쳐서 계속 쓰기로 마음먹고 남대문 시장에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어딘지도 모르니 시계 수리를 맡기러 나가는 것도
무리고, 남대문 시장에 나갈 일이 있을때 가지고 나가서
수리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몇달이 걸린 겁니다.

물론 그곳을 찾기도 아주 힘든 일이였습니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골목을 물어 물어 결국에 찾은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남일사라는 곳은 시계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원삼할아버지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지요

남대문 시장, 그 소란스런 시장통 속에 이런 곳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가하고 허름한 골목길을 찾아야 합니다.





사무실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그 앞에 가서도 들어서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사무실의 문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이곳이 이원삼 할아버지와 재생기술자 한분이 근무하는
창문이 없는 방으로 이루어진 작업실입니다.
드디어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이원삼, 1910년 함경남도 원산 단천리 출생으로
어린시절 자전거 수리하는 것이 너무 좋아 기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향 읍내에 있는 시계수리점을 통해 일본 시계 카달로그와 수리교본으로
독학으로 시계수리 배웠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중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누구에게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누구한테 배우면 그 이상이 될 수 없어서 자신이 노력해서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였습니다.


해방전 청진에서 시계수리점에서 일하다 실력이 알려져
26세에 일본 세이코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일하던 수리점 사장님의 배려로 일본 세이코사에서 근무하였다고 한다
6개월 간의 일본공장에서의 조립만으로는 기술이 발전이 없고 별재미가 없어서
다시 시계수리를 하게되었고 식민지시대 조국으로 귀국했고
해방전에는 중국에서 8년 간의 생활을 하였으며, 다시 북쪽인
청진에서 생활을 하다가 해방 및 6.25동란와중 단신으로
남쪽으로 오게되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 북한에도 가족이 있어 두명의 자식이 있고
남한에도 자제분이 한분있다고 합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고 이산가족 만남이나 상봉같은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생각을 접은 지 오래되었답니다.
무슨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나올거 같은 그런 사연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세월을 초월한 한 사람의 회한이 느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시계 기술에 있어서는 자부심이 대단히 높은데
그 이유는 현재 할아버지와 같이 시계의 부품들을 직접 깍고 만들어서
수리하는 기술자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시계 부품을 깍는 작은 선반이고 뒷면의 작은 동그란 기구들이
절삭용 날이라고 합니다. 저것으로 시계부속을 깍고 다듬는 것이지요

할아버지의 시계수리 기술이 어느정도냐면
할아버지에게 기술을 배운 제자들이 10여명이 넘는데,
지금은 뉴욕, 브라질등 해외에서도 그 기술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가장 기술이 뛰어난 제자는 이미 작고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하긴 할아버지는 96세입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오래된 시계 외국시계등 다양한 수리의뢰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한번은 미국에서 골동품 상을 하는 사람이 아주 오래된 시계를 들여와서
수리해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오래된 프랑스 시계로 수리를 맡긴 사람이 찾아가지 않아서
오랜 기간 보관중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작업대도 수십년이 지난 골동품 같은 것인데
그 모습에는 세월이 묻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시계를 고쳐왔고 과거의 수입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계를 고쳐서 쓰는 사람이 많지 않고 더군다나
전자 시계는 고쳐서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오래된 기계식 시계나 사연이 있는 시계, 유품으로 간직하는 시계
골동품 또 값으로 따지기 어려운 그런 유서깊은 시계 그런것들이
할아버지의 시계수리를  통해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동물원사장의 시계도 수리해서 지금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때를 벗겨내고, 다시 도금과 연마 작업 그리고 차디찬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계의 모습들은
이제는 또 하나의 사라져가는 이땅위의 한가지가 되었습니다.


97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정정한 모습으로
성남에서 남대문까지 일요일만 쉬고 출근하여
떨리지 않는 손으로 시계를 수리하는 모습은
그 주인을 닮은 야무진 작은 선반의 모습처럼 단단해 보입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에 놀라고
그 나이에 안경과 보조확대경만으로 작업을 하는 손은
떨림이 없이 작은 시계나사를 조립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모습!
그 절반의 나이까지만이라도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 세상에서 할아버지는 마치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소원이 있다면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꼭 그러실 것만 같았습니다.





과거 시계수리 기술로 좋은 대우를 받는 날 도 있었지만,
지금은 잊혀져가는 기술로 오직 시계수리만을 70년을 해온 할아버지는
오늘도 창문이 없는 작은 방에서 재생기술자와 시계를 수리하고
점심을 먹고 하루 한잔의 커피로 휴식을 취하고 또 시계를 수리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잃어 버리는 것,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진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은
십여년의 세월이 지나면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볼 수 없게 되지
않을 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는것은 나만의 느낌일런지....






언제 꺼질지 모르는 할아버지 작업대 밑의 작은 전기 난로의 불빛은
유난히도 밝고 따뜻해 보이는 날이였습니다.



음악 : "한민족의 발자취를 소리에 담아" 중 최승희 재즈송 "이태리 정원"

        광복60주년 기념음반자료 유성기 음반 복각 cd음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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